우동 한 그릇 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해마다 섣달 그믐날(12월 31일)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 년중 가장 바쁩니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도>도 이 날은 아침부터 눈코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 날은 일 년중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밤이 깊어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 추천 작품 2014.10.07
주머니 없는 옷 - 이원우 주머니 없는 옷 이원우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는 옷인 배내옷과 생을 마감하고 저승에 갈 때 마지막으로 입고 가는 옷인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 굳이 유행가 가사를 들먹일 것도 없이, 갈 때는 한 푼도 못 가지고 가는 것이 인생이다. 호화로운 관(棺)과 값비싼 수의, 수천 .. 추천 작품 2014.09.29
걸어 다니는 비석 - 김한성 걸어 다니는 비석 김한성 그의 일생을 묻고 있다. 유가족의 슬픔도 함께 묻는다. 문득 찾아올 나의 날을 생각해 본다. 영원히 살 것같이 뛰어오르던 인생의 계단에서 잠시 쉬면서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이 계단에도 층계참은 있는 모양이다. 하관 예배 설교 말씀이 마음에 스며든다. “우.. 추천 작품 2014.09.29
사라진 것들의 마지막 처소 -최민자 사라진 것들의 마지막 처소 최 민 자 노래방에 손전화를 떨어뜨리고 와 다시 찾으러 들어갔다. 사이키 조명도 찰찰이 소리도 증발해버린 불 꺼진 방. 조용하다. 노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노래방은 집단 해우소다. 짓눌린 그리움이 통절한 가락으로 뽑혀 나오고 잊었던 신명이 토막 난 춤사위로 흩뿌려진다. 잠자리처럼 허공을 선회하던 음표들은 천둥번개 속을 부유하다가 흥성거리는 어깨 위에 얹혀 진즉 신호등을 건넜을 것이다. 광화문을 지나고 한강을 건너새떼처럼 자우룩이 날아올랐을 것이다. 아득한 날, 이웃 마을 교회당에서 들려오던 종소리가 생각난다. 날 밝기 전, 교회를 떠나간 종소리들은 해질 녘이면 슬그머니 종루 안으로 기어들곤 했다. 반겨주는 이가 없어서였을까. 저녁답의 종은 더 길게 울었다. 아련한 종소리의 .. 추천 작품 2014.08.22
춘화(春花)의 춘화(春化)-은종일 춘화(春花)의 춘화(春化) 은종일 나 어릴 적에 보리농사는 다섯 식구가 일 년 동안 버티어 갈 양식이자 나의 학비였다. 겨울방학 때, 보리밭에 외양간 거름을 내면서 꽁꽁 얼어붙은 보리 순들이 죽지나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해동하자마자 작은집 빈 밭에 삼촌이 봄보리를 파종했다. 늦깎.. 추천 작품 2014.08.21
섬인 채 섬으로 서서 - 변해명 섬인 채 섬으로 서서 변해명 남해 바다는 파도의 여운조차 없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늘을 닮은 바다, 바다를 닮은 섬들, 그리고 섬기슭에 정박한 작은 배들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했다. 나는 일찍이 바다를 보았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아기자기하고 이야기가 담긴 바다를 보.. 추천 작품 2012.08.09
치마/문정희, 팬티/임보 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추천 작품 2012.06.26
나무-한흑구 나 무 한흑구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 뜰 앞에 서 있는 나무, 시냇가에 서 있는 나무, 우물 둑에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 길가에 서 있어 길 가는 사람들의 쉼터를 주는 나무, 산꼭대기 위에 서 있는 나무. 나는 나무를 사랑하다. 그것이 어떠한 나무인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꽃이 있건 없건, .. 추천 작품 2012.06.20
보리-한흑구(韓黑鷗) 보리 한흑구 1 보리. 너는 차가운 땅 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왔다. 이미 한 해도 저물어 논과 밭에는 벼도 아무런 곡식도 남김없이 다 거두어들인 뒤에, 해도 짧은 늦은 가을날, 농부는 밭을 갈고 논을 잘 손질하여서, 너를 차디찬 땅 속에 깊이 묻어 놓았다. 차가움이 엉긴 흙덩이들을 호미.. 추천 작품 2012.06.20
老木을 우러러보며-한흑구 老木을 우러러보며 한 흑 구 나는 오늘 보경사(寶鏡寺) 앞뜰에 앉아서 하늘 높이 솟아오른 느티나무 노목 하나를 쳐다본다. 오백 년이나 넘어 살았다는 이 노목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모르는 듯이 상하좌우로 확 퍼져 올라섰다. 그러나, 지금 이 노목은 검푸른 그늘을 새파란 잔디 위에 .. 추천 작품 2012.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