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작품

불청객

봉황터 2006. 10. 13. 12:41
 

불청객


장   호   병



 

그대는 어느 누구에게도 초대받은 적이 없다. 도둑고양이처럼 그녀에게 찾아들었을 뿐이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그대가 그녀를 선택하는 데 요모조모 저울질을 해보지는 않았으리라. 그녀가 마음씨 착하고 젊다는 것, 그대를 경계할 틈도 없이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이 그대를 받아들여야 할 당위는 아니잖은가.

무례한 그대는 그녀의 젊음과 꿈과 눈물을 양식 삼아 기생하고 있네. 그대는 결코 점령군이 아니다. 빚쟁이처럼 거드름을 피울 권리는 더더구나 없다. 숨죽이고 들어와 신세를 지고 생명을 부지한다면, 그녀를 상전으로 떠받들라. 그리고 끝까지 주인에게 자세를 낮추고 그가 먹다 남기는 여분의 자양으로 그대의 굶주린 배를 채워야 하리. 그것도 얼마나 분에 넘치는 일인가.

그대도 처음부터 오만방자하지는 않았을 터. 소리 소문 없이 네발걸음의 아주 낮은 자세로 들어와 살얼음을 딛듯 조심스럽고 송구스러웠으리라. 뿐만 아니라 고통을 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그대 자신이 몹시도 원망스러웠으리라.

그대의 주인이 최선을 다한 삶을 사는 동안 그대는 주인의 몸 안에 무슨 음모를 꾸몄는가. 무너뜨리는 일 외에 그대가 할 일은 정녕 없단 말인가.

그대의 착한 주인은 낯선 침략자를 몰아내고자 더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떠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무치도록 야속한 존재일세.

오히려 적반하장. 무릇 생명 가진 것들은 다 욕심을 부린다고? 무단점령의 시효를 들어 그대의 허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는 말라.

그대가 달콤한 과육인양 파먹고 있는 그녀의 살은 비단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그녀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가족이 있다네.

제 살기 위해 남 해치는 일이 저 잡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가. 그대의 주인이 쇠하는 날, 그대가 지금 누리고 있는 안식도, 공급되는 자양분도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게. 그대의 운명도 참으로 딱하구먼.

그대와 그대의 착한 주인은 서로 쓰러뜨려야 할 적이 아니네.

그래서, 그래서 말일세. 그대의 주인이 태만하거나 교만에 빠질 때 따끔하게 일깨워주는 진정한 동반자는 될 수 없겠는가.

그대를 품은 그녀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네.

부탁컨대 그대의 주인과 오래 오래 친구 하시게. 그리고 자네는 영롱한 진주로 다시 태어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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