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장호병
물고기는 어떤 미끼를 잘 물까?
땅 위에서 본다면 물 속은 밤중이리라. 수중의 물고기가 어디에서 잠자고 어느 길로 다니는지 알 수 없다. 겁 많고 조심성 많은 물고기 앞에다 낚시를 드리우고 이들이 덥석 물 때 낚아 올리는 일에 호기심이 인다. 하지만 낚시에는 자신이 없다. 선혈이 흐르도록 지렁이를 손톱으로 잘라 미끼를 끼우기는 그리 유쾌하지 않다. 어쩌다 한 마리 잡히기라도 하면 물고기의 코나 입을 다치지 않도록 미늘로부터 벗겨내는 일 또한 얼마나 간을 졸이게 하는가. 이래저래 낚시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드물게 낚싯길에 따라서기도 한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나의 찌는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연신 낚싯대를 들어올리던 친구가 민망스러웠던지 자리를 바꾸어준다. 작은 파랑 속에서 찌를 보고 있으면 나뭇잎 배에 몸을 의지한 채 마냥 떠내려가는 것 같아 현기증이 인다. 물 속 미물들은 나에게는 고기에 대한 간절한 염원도 인내심도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내 친구의 낚시로 몰린다.
낚시의 세계라고 비법이 왜 없겠는가. 낚시 전문가들도 월척을 잡을 수 있다는 기대나 희망 하나로 오늘의 허탕을 마다하지 않는데 오로지 잦은 입질만이라도 바라는 난 분명 성미 급한 현실주의자인가 보다.
수 년 전 바다낚시를 간 적이 있다. 방파제에서 땅거미가 질 무렵까지 두어 시간 동안 낚시를 해도 새-끼손가락만 한 고기 몇 마리가 전부였다. 밑밥을 뿌리고 낚싯대를 도로 건져 핏기가 없어진 지렁이 대신 선혈이 흐르는 것으로 부지런히 갈아 끼워도 거의 입질조차 하지 않았다. 옆 사람의 경우는 간혹 밑밥을 뿌릴 뿐이었는데도 제법 큰 고기가 망에 그득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그는 아예 미끼를 사용하지 않았다. 낚싯줄에는 인조 새우가 달린 낚시바늘이 즐비하게 매달려 있었다.
지난여름 청량산 계곡에서 목격한 일이다. 피서객들이 삼삼오오 낚싯대를 물속에 드리워 은어를 낚고 있었다. 다리 아래 물은 모래알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다. 낚싯줄에는 구멍이 송송 뚫린 밑밥통과 작은 낚시바늘이 촘촘하게 달려 있다. 낚싯대를 드리우면 통 틈 사이로 밑밥이 조금씩 빠져나와 물고기를 유인한다. 낚시바늘에는 빨간색 또는 초록색의 발광체가 깨알만 하게 달려 있다. 냄새와 색에 현혹된 은어가 이를 후루룩 들이키지 않을 수 없다. 낚시를 도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눈살을 찌푸릴 만하다
낚시꾼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단순히 고기를 잡는 데 재미를 두는 사람, 오로지 대어에 눈이 어두운 사람, 고기보다는 장차 큰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리라.
어느 경우든 목적하는 고기가 쉽게 잡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련한 낚시꾼은 언젠가는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밥알에서부터 갯지렁이, 새우와 같은 자연에서 얻는 미끼를 그대로 쓰기도 하고 깻묵이나 미숫가루 등을 이용하여 손수 만들기도 한다. 메기를 잡기 위해서는 손가락보다 더 큰 깨벌레를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토막내면서도 징그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처럼 훌륭한 낚시꾼은 우선 미끼를 준비할 줄 안다. 하지만 낚시꾼에게 가장 좋은 미끼는 희망이라는 말도 있다.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입질을 받은 날은 잠자리에 들 때 천장에서 쑤욱 내려가는 수많은 찌들을 보게 된다. 낚시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난 왜 괜찮은 낚시꾼이 되지 못했을까.
낚고자 하는 고기를 대접하는 마음으로 손수 미끼를 장만한 적이 있었던가 자문해본다. 고작 낚시점에서 판매하는 깻묵이나 지렁이가 전부였다. 물고기라고 왜 먹음직스럽고 맛좋은 먹이를 모르겠는가. 그러면서 미끼를 힘껏 물어주기를 얼마나 바랐던가. 부끄럽게 여길 일이다. 그리고 조심성 있는 고기라면 아무 먹이나 넙죽넙죽 받아 삼키지는 않을 것이 자명하거늘 난 얼마나 자주 낚싯대를 넣었다 걷었다를 반복했는가.
또한 기도하는 심정으로 고기들을 사랑했는지 반문해 본다. 고기는 나에게 잡힌 이상 맛있는 먹이가 될 때 최선의 보시가 되는 것이다. 남김없이 맛있게 먹어준 적이 없다. 고통을 안겨줬다가 다시 물로 놓아주면서도 생명을 주는 것처럼 기껏 자만이나 하지 않았던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대어를 낚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비법이 있을 것이다. 낚시를 드리우면서 무슨 고기를 얼마나 잡아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고기가 나의 낚시를 물지 않는 것은 고기에게 그런 나의 염원이 닿지 않았음이리라. 월척을 낚을 만한 미끼에 정성을 쏟지도 않고, 대어를 기다리는 인내심도 없이 또 낚고자 하는 애도 쓰지 않으면서 나는 낚시와의 섣부른 경계를 얼마나 자주 그었던가.
재미 삼아 하는 일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오늘 나에게 허용된 미끼가 보잘것없을지라도 인조미끼와 같은 것으로 기만은 하지 않으리라. 베드로처럼 사람의 마음까지 낚는 낚시꾼으로 거듭 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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