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작품

봉황터 2009. 6. 29. 17:24

 

 

장호병

 


 

현실을 반영해서 꿈이런가? 현실과 동떨어져서 꿈인가?

“엄마한테 빨리 데려다 주세요."

아이는 칭얼거리며,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급한 김에 나는 등을 내밀어 아이를 업고 아내에게로 뛰었다. 손닿을 듯한 거리의 아내였지만 걸음은 왜 그리도 떨어지지 않던지. 다가갈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발걸음은 조금도 나아가지 않고, 돌부리에 채였는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잠이 깼다.

너무도 선명했다.

아이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어린아이는 근심거리란 말이 있지 않은가. 해외연수에서 돌아오는 아들이 내일 비행기를 타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WHO는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최고위 단계의 경보발령을 눈앞에 두고 있고, 어제께는 에어프랑스기가 이유도 모르는 채 추락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잠이 확 달아났다. 불안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뒤적이니 0시 34분 무렵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시험결과는 며칠 있어야 알 수 있으며 체크아웃 준비를 잘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로 주의하라고 당부하기에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어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이튿날 역시 안절부절 못하면서 오전수업을 간신히 끝냈지만 오후 내내 좌불안석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짐을 챙겨 밭에 나갔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는 몸을 괴롭히는 것이 탈출의 한 방편이 되리라. 누구한테 털어놓을 수도 없고 아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는 근신하는 마음으로 조심조심 살얼음을 디뎠다. 어둠살이 짙어지고서야 연장을 거두다가 밭둑에서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아픈 줄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발이 꾀나 많이 부어 있었다. 이튿날 병원에 갔더니 뼈에 금이 갔다며 깁스를 했다.

저녁 무렵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서야 나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란 말이 튀어나왔다.

안도의 순간,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휴, 잘 다치셨어요. 당신이 다쳐 그나마 다행입니다.”

꿈땜 잘 했다는 아내의 말이 서운하게 들리지 않아서 또 한번 놀랐다.

아들을 제치고, 아직도 아내에게 우선순위 1번이란 나이든 남자의 기대는 순전히 꿈이었다.

 

 계간 <에세이스트> 2009 가을호, 초대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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