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의미의 구성과 조합
맥도날드를 위협하는 업종은?
장 호 병
글쓰기는 화장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을 대하면 그의 자세를 읽을 수 없습니다. 의미를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카오스chaos의 세계입니다. 화장품cosmetic을 통하여, 그는 자신의 얼굴에서 눈썹이 약하다면 더 진하게 그릴 것입니다.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지게 할 것인지, 부드러운 인상을 느끼게 할 것인지, 그리고 어느 부분을 더 두드러지게 나타낼 것인지 자신의 의도에 맞추어 화장을 합니다. 화장된 얼굴은 조화롭고 질서가 잡힌 코스모스cosmos의 세계가 됩니다.
작가 역시 있는 그대로의 세계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세계를 질서화시키는 사람입니다. 대상을 서로 비교, 분류하고 이를 다시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가시적 세계에서 관찰을 통하여
유년시절 내 공상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문살이었습니다. 가지고 놀 마땅한 장난감이 없는 따분한 일상이었기에 낮 동안은 창호지 위에 펼쳐지는 그림자를 좇았습니다. 때로는 시선이 머문 문살에서 ㄱ, ㄴ, ㄷ 등 한글 자모를 찾기도 했는데 이는 나에게 큰 유희거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세종대왕이 문살에서 닿소리 모양에 관한 힌트를 얻었으리라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문살을 따라다니면서 한글 자모를 써 보거나 글자를 만들고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모아보는 재미가 크게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의 유치한 놀이가 다음과 같은 체계적 분류의 단초가 되고 있습니다.
그룹 |
예 |
① |
ㅗ ㅛ ㅜ ㅠ |
② |
ㄷ ㅌ |
③ |
ㅁ ㅇ ㅍ ㅡ ㅣ |
④ |
ㄱ ㄴ ㄹ |
그럼 ㅂ, ㅅ과 ㅏ, ㅑ는 각각 어느 그룹에 속할까요?
① ② 그룹뿐이라면 자음과 모음이라는 기준이 작용하여 우리는 주저할 것 없이 ㅂ, ㅅ은 ② 그룹, ㅏ, ㅑ는 ① 그룹으로 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③ ④의 그룹이 있으니 우리는 망설여야 합니다. ㅂ, ㅅ은 ① 그룹에, ㅏ, ㅑ는 ② 그룹으로 보내야 합니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ㅈ, ㅊ, ㅎ, ㅋ, ㅓ, ㅕ 그리고 ‘소’ ‘애’ ‘B’ ‘W’ 등도 제 자리에 찾아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즉 ① 그룹은 좌우대칭, ② 그룹은 상하대칭, ③ 그룹은 좌우․상하 동시 대칭, ④ 그룹은 그 외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습득된 지식과 이치를 통한 비가시적 세계에서의 의미 해석
동의보감을 펴낸 이조시대 한의학의 진수, 허준 선생이 어느 날 지방 나들이를 갔다.
날이 저물어 조그만 마을에 머물게 되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늦게 잠자리에 든 선생은 다급한 목소리에 잠을 깼다.
“나으리, 우리 집사람 좀 살려 주십시오,”
새벽녘에 들이닥친 마을 사람의 딱한 사정을 들어 보니, 자기 아내가 산기가 있으나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묵고 있던 선생은 약재도 없고 시간도 없어 뾰족한 처방이 떠오르지 아니하여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허준 선생은 참으로 묘한 처방을 내렸다.
“앞뜨락의 풀섶에 가면 아직 이슬이 남아 있을 테니 깨끗한 이슬 한 모금을 받아 들게 하시오.”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어리둥절했지만 그의 영험성을 들어 믿고 있었기에 이슬을 한 모금 받아 산모에게 먹였다. 물론 산모는 무사히 아이를 출산했고 모두 건강했다.
이윽고 허준 선생이 마을을 떠난 뒤 한참 지나 그 마을에 비슷한 일이 생겼다. 다만 산기가 지난 번과는 달리 새벽녘이 아닌 해질녘에 시작되었다. 과거의 경험을 알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이슬의 약효를 믿었던 터라, 산모에게 선생의 이슬 처방을 권했다.
그러나 깨끗한 저녁 이슬을 받아 먹은 산모와 아이는 모두 죽고 말았다.
허준 선생의 처방은 아침 이슬은 ‘풀어지는 것(解)’ 저녁 이슬은 ‘맺히는 것(結)’과 같은 원리에 의한 것이었던 것이다.
결국 같은 이슬이라도 아침 이슬과 저녁 이슬의 효능은 다르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도 폭력과 같은 ‘저녁’ 이슬로 엉키게 하는 것보다는 대화와 같은 ‘아침’ 이슬로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침 이슬로 풀어 나가야」1)
3. 대상간의 유사성을 통하여
뿌리의 세계도 사람 사는 곳과 다를 바 없이 얼키설키 엮여 있다. 앞길을 가로막는다고 쳐 없애려 하지 않고 서로가 비껴가는 배려가 보인다. 그 위로 풀들은 잔뿌리를 옆으로 뻗어 물기를 머금고 큰 나무는 긴 뿌리로 작은 나무와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땅 위에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해를 나누어 가진다. 아름다운 거리다. 밀착되었으면서도 지킬 것은 지켜주는 미덕이 있다.
그런데 개울 아래에는 커다란 나무둥치가 뿌리를 온통 드러내고 누웠다. 키 큰 나무는 바람을 타기 쉬운 탓도 있지만 그 키 때문에 작은 나무들을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작은 나무와 풀 한 포기에라도 손을 내밀어야 했으리라. 혼자 잘났다고 독불장군처럼 군 것 같아 씁쓸하다. 남을 위해 내미는 손이 오히려 나를 세우는 기둥이 되는 것을 뿌리들에게서 배운다.
―송복련의 「뿌리」 중에서
4. 이질적 요소에서
수필은 삶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요,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학입니다. 세상을 바르게 읽고 세상과 소통하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각각의 사물은 모든 다른 사물들의 거울”이라고 한 퐁티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물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감각적 떨림을 읽을 수 있어야 하듯 전혀 이질적인 현상과 현상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작용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인들이 불가사의로 여기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한국시장에서 맥도널드가 맥을 추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시장에서의 롯데리아라는 강력한 라이벌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자료를 보면, 애니콜이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기만 하면 매출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세계 증권시장의 창이라 할 수 있는 월가에서는 나라별 이종화폐간의 교환비율을 정할 때,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맥도널드 햄버그를 그 나라에서 구입할 때 드는 비용을 기준으로 삼아왔습니다. 그리고 맥도널드 햄버그의 소비량으로 시중의 현금 유동성을 점쳐왔습니다. 이를 맥도널드지수라 하는데, 최근 월가는 애니콜지수로 대체하였다 합니다.
나이키 역시 운동화의 매출이 부진하여 고심하다가 새로운 게임이 개발되어 상품으로 출시되면 매출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5. 관계 속에서의 의미
침대를 배경으로 “이제 좀 쉽시다.”라는 표현은 ‘신혼부부 간의 대화이냐 노부부 간의 대화이냐’에 따라 상황은 ‘자리로부터 나느냐, 자리로 드느냐’와 같은 정반대의 의미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수필가는 바로 의미를 요리하는 사람입니다.
계간 <문장>제4호(2008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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