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짓는 사람들은 고독하다. 백지 앞에선 늘 혼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 그래서 작가들은 더 깊이 사색하고 더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며 스스로 용기를 북돋운다. 더러는 작가들끼리 모임을 꾸려 고민을 나눈다. 대구지역에도 수십개의 문인단체가 활동 중이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모여 하는 문학은 어떤 모습일까? 단체별로 찾아가 그 활동을 엿본다.<편집자주>
◇달구벌수필문학회. 정이 넘치고 깨가 쏟아진다고 소문났다더니 정말 그랬다. 고희를 바라보는 노신사부터 386세대 주부에 이르기까지 툭 터놓고 문학을 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단체 회원 수는 27명. 모두 열혈 수필가들이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모여 새 작품을 발표하고 도움말을 주고 받는다.
처음 단체를 찾아간 지난 13일에도 월례 작품 합평회가 열리고 있었다. 딱딱하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막상 구경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져들었다. 수필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단체와의 첫 만남을 이날 배운 수필쓰기의 5요소를 좇아 글로 풀어봤다.
1. 행동(Action)
좋은 수필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좋은 문인단체도 마찬가지다. 작가들의 영감과 창작열을 자극할 수 있어야 알찬 문인단체다.
이 점에서 달구벌수필문학회는 독특한 자극제를 한가지 갖고 있다.
바로 재교육이다.
단체는 결성된 지 올해로 6주년을 맞았지만 글쓰기 교육 없이 합평회를 가진 적은 거의 없다.
회원들은 매월 모임 때마다 선배 수필가이자 대구과학대 겸임교수인 장호병 씨를 초청해 글쓰기 이론과 노하우를 배워왔다. 수필 스터디 그룹에서 출발해 발전해온 만큼 초심을 잃지 않고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회원들의 의지 덕분이다.
단체 회원은 2000년 첫 동인(지산수필) 결성 당시만 해도 수성구 지산동 문학도서관의 작가콜로퀴엄 강좌 수강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장 교수도 6년 전 강사로 만난 게 인연의 시작이다.
단체는 올해 2월 달구벌수필문학회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회원 18명을 등단시키는 쾌거를 거뒀지만 배우려는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장 교수 역시 유별난 만학도들을 위해 수년째 아낌없는 지원을 해오고 있다.
13일 합평회에서도 그는 “글쓰기가 두렵더라도 일단 시도하고 보라”며 “언젠가는 작은 바늘 구멍이 뚫리고 그 틈으로 황소 바람이 불어올 것”이라며 회원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줬다.
2. 배경(Background)
단체 회원들은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다.
나이대는 30대부터 60대 후반까지. 남자 회원이 6명, 여성이 21명이다. 직업은 주부, 회사원, 가톨릭 선교사, 신문 기자, 변호사, 의사, 교수 등 각양각색이다.
서로 살아온 길이나 배경이 다르다 보니 매월 나오는 작품들의 색깔도 다채롭다.
지난 합평회에선 ‘암(癌)’을 공통 주제로 한 작품 12편이 소개됐다. 내용과 문체 등 저마다 작품 스타일이 판이하게 달랐다.
최고령인 원용수(68∙교직 퇴임) 회원은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작품 ‘정상보(正常步)’를 발표했다. 최연소인 김영희(36∙회사원)씨는 수필 ‘아버지’로 편찮으신 아버지를 둔 젊은 딸의 심정을 풀어냈다.
이밖에 김은영(대구문인협회 간사) 회원은 시인 출신답게 참신한 어휘력이 돋보이는 작품 ‘아버지의 대문’으로 참석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또 성인 나이트 클럽에서의 경험담을 그린 수필 ‘미끼’의 임은주(주부) 회원은 예술과 외설에 대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줄사탕처럼 이어지는 수필 선물에 날카로운 비평까지 곁들여져 합평회는 색다른 재미로 넘쳐났다.
3. 전개(Development)
재능이 뛰어나고 성실한 것 보다 더 효과적인 발전 에너지는 ‘즐기면서 몰두하는 능력’이라고들 한다.
달구벌수필문학회의 활기차고 의욕적인 기운도 바로 이런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많지 않은 회원 수에 매달 참신한 신작들이 쏟아져 나오고 문학상 수상과 등단 소식이 잇따르는 것만 봐도 그 힘을 느낄 수 있다.
강수정(2001∙문학과 경계), 송복련∙피귀자∙오재광(2003∙수필과 비평), 임수진(2004∙수필문학) 등 이미 등단한 회원만 18명이다.
회원들의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강대아 회원은 김유정문학상 최우수상(2002)을, 이정숙 회원은 시흥문학제 대상(2005)을 받는 등 해마다 크고 작은 문학상이 단체로 쏠렸다.
올봄에는 6년간 발표된 작품들을 모아 동인지 ‘수필과 지성’ 창간호를 펴내기도 했다.
올초 단체 이름을 바꾼 것을 시작으로 도약을 위해 전진하는 ‘전개’ 양상이 심상치 않다. 단체의 바람대로 12월께 두 번째 동인지를 내고 회원 수도 30~40명으로 늘어나면 문단에서 더 큰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성 싶다.
4. 절정(Climax)
합평회 하이라이트는 마무리 순서인 자유 토론 시간이었다. 술잔을 기울여가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회원들은 나이나 성별 따위의 차이는 까맣게 잊은 듯 했다.
모두들 “‘수필’이란 공동 관심사가 있어 다른 차이는 전부 초월했다”고 했다.
한 회원은 “모든 회원이 투잡, 쓰리잡족”이라며 자랑했다. 주변에서도 맞장구를 치며 “생계를 위한 직업 외에도 이렇게 글로써 자아를 드러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직업이 하나 더 있어 마냥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5. 결말(Ending)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도 벅찬 바쁜 세상에 애써 글을 쓰고 또 공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달구벌수필문학회처럼 열정적으로 이끌어주는 동인이 있다면 불가능하지만도 않다.
스터디그룹에서 출발해 주목받는 수필동인으로 성장한 이 단체처럼 시도하려는 용기만 있으면 누구나 얼마든지 일상 속에서 문학의 향기를 누릴 수 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분명 창대할 것이다.
박민혜기자 min@mi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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