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렇게 지냅니다

[스크랩] ‘옵하’라 불러주오-장호병

봉황터 2014. 7. 30. 22:07

‘옵하’라 불러주오


장호병

(계간 문장 주간, 죽순문학회장)


손가락이라고 다 같은 손가락이 아니라 하나하나에는 이름이 있다. 수많은 나뭇잎도 다 같은 나뭇잎이 아니다. 한 잎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다른 것과 구분할 수 있는 어휘를 동원하여야 한다. 하나의 물상을 지적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단 하나의 명사, 그 상태를 묘사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단 하나의 형용사, 그 움직임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단 하나의 동사가 있다. 즉 딱 맞는 표현은 하나뿐이다. 이를 일물일어, 일사일언이라 일컫는다.

고모부란 인간관계가 있어도 고모부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영어에는 없다. 숙부, 외숙, 당숙, 이모부, 고모부 등의 숙항이 영어에서는 구분 없이 uncle로 통한다. 가족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 이렇게 세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어가 영어보다 한 수 위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형제 없이 외톨이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도 앞으로는 굳이 관계를 구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제’라는 호칭만으로도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결혼 청첩장을 받으면 누가 초대하는지 그 주체가 분명하지 않다. 내 기억 속 오랜 청첩장에는 혼주의 지인 중 한 분이나 주례자가 청첩인으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아무개 ‘씨’의 장남 ⧍⧍ ‘군’ 또는 삼녀 ○○ ‘양’이란 표현이 당연히 들어 있었다.

요즘 청첩장 초대의 글에는 ‘저희 두 사람’이란 말이 흔히 등장한다. 이는 신랑신부가 일면식도 없는 양가 부모의 친지들까지 초청한다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이다. 무례하게 부모의 이름 아래에는 씨(氏)자도 붙이지 않는다.

장남 장녀란 문구는 또 어떤가. 분명 동생이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우 외아들이거나 외딸이다. 하나의 양식에서 몇 자만 바꾸어 신랑 신부 측이 공히 사용하자니 이런 경우가 생긴 것이다. 따지기 좋아하는 우리가 이 결혼식 청첩장에서만큼은 두루뭉솔 넘어가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인쇄소나 예식장의 양식에 따르다보니 외아들이 장남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다보면 장남은 동생이 있든 없든 처음 낳은 아들이라는 뜻이 될 것이다.

말도 생물과 같다. 시간 흐름에 따라 많은 말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기도 하고 또 새롭게 진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말 속에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문화나 사고의 DNA가 녹아 있다. 돌 무렵의 아이들을 어를 때 우리는 곧잘 ‘도리도리 짝짜꿍’ 놀이를 한다. 여기에는 사람의 도리를 은연중에 가르치려는 선인들의 뜻이 담겨 있다.

‘몸’은 ‘모음’에서 온 말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죄다 모은 것을 몸이라 한다. 그런데 거기에 마음이나 정신까지 모은 것을 생각한다면 만점 한국인이다. 웬만큼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몸을 통하여 이목구비며 비례 대칭 등 아름다움의 조건과 재능까지 읽으면서도 그 속에 깃든 마음이나 정신을 읽지 못하여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몸은 드러나는 육신만을 모은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정신세계도 모았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하리라.

며느리가 아들에게 오빠라 부르는 것을 본 어느 시아버지는 요즘 젊은이들이 본데없이 자라서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신행을 온 딸이 사위에게 오빠라 불러서 낯이 화끈거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어린 공주들이 엄마 아빠의 호칭에서 은연중에 자기는 오빠와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요즘 들어 오빠라는 말이 참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오빠라는 호칭에 안주하는 새댁의 심리에도 이해가 간다. 결혼 전 연애시절의 오빠는 하늘의 별도 달도 따다주는 만능의 호위무사가 아니었던가. 오빠란 호칭을 고수하는 데는 앞으로도 영원히 갑으로서의 공주대접을 받고 싶다는 심리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남자도 오빠란 호칭이 싫지는 않다. 비록 ‘○○전’의 주인도, 저택의 주인도 아닌 이상, ‘전하’나 ‘저하’ 소리는 못 들어도 ‘옵하’란 호칭에서 어깨가 으쓱해질지도 모른다.

아내는 오빠를 통하여 계속 갑의 위치에 머물고 싶어 하고, 남편은 ‘옵하’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아내들이여, 오빠가 아니라 ‘옵하’라 불러주오.

(대구일보, 2014. 7. 29 아침논단)

출처 : 자서전회고록
글쓴이 : 봉황터_장호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