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강좌

입문자를 위한 글쓰기 12계명(1)

봉황터 2010. 7. 2. 18:35

 

 

13 문장강좌(수필)  삶은 글쓰기의 한 방편



입문자를 위한 글쓰기 12계명(1)



장호병∣문장 발행인


                      



어떤 억만장자의 이야기이다.

꿈속에서 그는 성공의 비결을 파는 가게가 어느 산속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더 큰 성공을 간절히 원했던 그는 그 비결을 사려고 길을 나섰다. 천신만고 끝에 가게를 찾아냈다. 두근대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더니 주인이 반갑게 그를 맞았다.

“우리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성공의 비결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공을 원하세요?”

“저는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크게 성공하고 싶습니다. 이 가게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성공의 비결을 주십시오.”

“예, 선생께서는 가장 큰 성공의 비결을 찾으시는군요. 그것은 값이 하도 비싸서 그 동안 사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비쌉니까. 돈이라면 걱정 마시고 어서 그 비결이나 가져오십시오.”

주인은 어이없다는 듯 가장 큰 성공의 비결이 담긴 상자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상자를 포장하고 있던 보자기를 풀어 내린 순간, 상자 위에 적힌 가격표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가격 : 자신의 남은 생애에서 ‘편안한 생활’은 모두 포기할 것.


글쓰기 강좌를 하면서 느끼는 바이지만, 글쓰기는 삶과 참으로 많이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쓰기는 의미를 좇는 일입니다. 쓰지 않으면 오늘 하루야 편하겠지만 뒤돌아보면 무의미한 날이 될 것입니다. 글을 써야겠다는 것은 ‘편안한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언가 일을 도모하려면 꼭 발목을 잡는 일이 생겨나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부터 편안하게 살겠다고 생각한다면 글쓰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또 발목 잡는 일보다 글쓰기를 후순위로 미룬다면 이 또한 글쓰기를 포기하는 일이겠지요.

어떤 비결이나 방법을 배워서 글을 쓴다고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저곳의 글쓰기 교실을 기웃거리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는 배워서 쓰는 글은 이내 한계에 이르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치열한 삶이 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나, 순수와 만나는 일입니다. 그때 머리나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충격의 정도가 글의 성패를 좌우한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글쓰기를 공부하는 동아리에서 회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이러한 충격을 느낀 이들로부터 신선한 자극을 함께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리고 실제로 그런 동아리 활동을 통하여 창작에의 자극을 무수히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충격은 깨달음에서 옵니다. 깨달음이 있을 때 글로 써내어야겠다고 유혹을 받는 것입니다. 밤을 꼴깍 새우는 황홀한 고통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유혹을 느끼지 못한다면 가슴이 아닌 머리로 글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런 경우 한 편의 글을 탈고했다 하더라도 마음이 개운치 않습니다.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글쓰기에 입문하시는 분들을 위한 글쓰기 12계명은 삶의 계명으로 바꾸어도 그다지 틀리지 않습니다. 삶, 12계명으로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한결 편하게 글쓰기에 입문하게 될 것입니다.


1. 즐겁고 유쾌하게 씁니다.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것, 깨달음에서부터 글쓰기는 시작합니다. 곧잘 낙서도 하고, 글감을 발견했다고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도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답답하고 불안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깨달음이나 발견의 희열도 크지만 글로의 창작과정에서는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글은 다시 삶의 증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지켜볼 것입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창작과정에서의 은근한 고통이 따릅니다. 탈고 후의 홀가분함은 잠시뿐이고, 앞으로 언행의 괴리에 따른 심적 불편이 수반될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 자체가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남에게 보여진다는 점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글과 비교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고요. 삶이 그저 삶일 뿐이듯, 글 또한 글일 뿐이라 여기십시오. 남에게 보여지고, 남의 삶과 비교된다고 해서 나의 삶을 어쩌지 못하듯 글 또한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즐겁고 유쾌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듯 나날이 유쾌하게 즐겁게 쓰십시오.


2. 멋지게, 재미있게 쓰려고 꾸미지 않습니다.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쓰면 됩니다. 독자는 가공된 이야기보다 담백한,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십시오. 당신이 느끼고 표현하는 일 그 자체로서 세상은 새롭게 보입니다.


딸아이는 화장실에 앉아 가끔 아빠에게 생리대를 부탁한다. 발그레한 꽃잎 두어 장을 궁둥이에 붙이고 집안을 활보할 때도 있다. 귀띔해 주면 이부자리에도 몇 장 뿌려 놓았다며 되레 농을 한다. 남편이 볼까 봐 내가 질겁을 하면,

"아빠가 먼저 발견해 말해 주셨어." 

라며 눈을 찡긋한다. 때로는 엄마인 나에게 잔소리 들을까 봐 남편이 딸아이에게 얼른 바꿔 입으라고 말하면 별로 놀라지도 않고

"아빠도 한번 해 보실래요. 얼마나 귀찮은지 몰라요." 한다.

분명 장미의 귀여운 반란이다. 몸을 숨기며 언제나 어두운 곳에서만 서늘하게 피웠던 꽃이 촉수를 뻗으며 당당하게 자기를 드러내게 될 줄이야. 잘못이라도 저지른 양 무조건 고개를 숙였던 우리 세대를 생각하면 나는 신세대의 발랄함에 대리만족마저 느낀다. 평소 몸가짐을 조심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극도의 수치스러움으로 움츠릴 것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딸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생각해 본다. 반란의 끝이 어디까지 일까. 부모로서 어느 선까지 받아들이고 또 어느 선까지 간섭을 해야 할 지, 그러려면 나는 얼마나 바뀌어야 하는 것인지.

세대차이의 간격을 재어보며 내가 고민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장미의 반란은 계속 진행 중일 것이다. 

―김귀선, 「장미들의 반란」 중 일부


3. 뒤집어서 또는 낯설게 세상을 봅니다.

자동차 왕이라 할 수 있는 핸리 포드는 “내게 성공의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보입니다. 가위에는 자르고 나누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상호 협력의 모델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위 이빨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비록 무딘 날이지만 두 개가 위아래에서 힘을 합치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없단다. 신처경(新妻經)이란 글을 친구가 보내왔다. 그 중 하나도 부부간  조화였다. 가위는 두 날 사이에 틈이 생기면 아무 쓸모없단다. 가위는 이제 이별의 연상聯想이 아니라 협력하는 부부의 표상(表象)으로 새롭게 칭송받고 있다.

―석현수, 「가위 칭송」 중 일부


코체비츠는 그의 시 「울므로 가는 여정」에서 ‘이제 나는 울므에 있다/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로 맺고 있습니다. 울므에 당도하는 것이 여행의 끝은 아닙니다. 세상을 뒤집어 보고, 질문을 던지면서 그에 대해 답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을 또 던져야 합니다. 따라서 작가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결별해야 합니다.


글쓰기가 먹고 사는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 외톨이가 된 듯 허전함을 감출 수 없습니다. 글쓰기는 바로 삶을 살아가면서, 머리로 가슴으로 느끼게 되는 충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글은 찾아 나선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이 세상을 향해 절규하는, 쿵쾅거리는 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